
기독교 역사에서 여성순교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고, 믿음을 버리라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다 죽음을 맞은 여성 그리스도인을 뜻한다. 초대교회에는 여러 여성순교자가 있었으며, 그 가운데 페르페투아, 펠리키타스, 블란디나는 비교적 이른 기독교 문헌에 이름과 순교의 내용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을 살펴볼 때 먼저 분명히 구분해야 할 기준이 있다. 세 사람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라 신약성경 이후 초기 교회사에서 알려진 사람들이다. 성경에는 여성 신자들이 박해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페르페투아·펠리키타스·블란디나의 생애와 순교는 성경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 문헌과 교회사 자료를 통해 전해진다.
그러므로 여성순교자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성경에 직접 기록된 내용, 초기 문헌이 전하는 역사적 사건, 문헌에 담긴 신앙적 해석, 오늘날의 적용을 서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접근하면 감동을 높이기 위해 기록에 없는 장면을 보태거나, 후대의 전승을 성경의 사실처럼 이해하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여성순교자란 무엇이며 성경에는 어떻게 나타날까?

여성순교자는 단순히 박해받은 여성을 뜻하지 않는다
여성순교자라는 말은 신앙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모든 여성을 가리키지 않는다. 기독교 역사에서 순교자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은 사람을 중심으로 이해된다.
초기 기독교에서 순교의 중심에는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증언이 있었다. 순교자는 죽음을 스스로 목표로 삼은 사람이 아니라, 이미 닥친 박해 속에서 신앙을 부인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이 기준은 여성순교자의 이야기를 오늘의 신앙에 연결할 때도 중요하다. 일부러 위험을 찾아가거나 고통을 많이 받아야 믿음이 깊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순교 기록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가보다 믿음과 현실적인 이익이 맞부딪힐 때 무엇을 선택했는가에 더 가깝다.
성경은 여성도 초기 교회 박해의 대상이었다고 기록한다
신약성경에는 페르페투아나 블란디나처럼 후대에 알려진 여성순교자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 그리스도인들도 초기 교회의 박해 대상이었다는 사실은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도행전 8장 3절은 스데반이 죽은 뒤 사울이 교회를 괴롭히며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와 여자를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고 기록한다. 사도행전 22장에서 바울도 과거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을 박해하고 남녀를 결박해 감옥에 넘겼다고 말한다.
여기서 박해를 받았다는 기록과 순교했다는 기록은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성경에 어떤 여성이 투옥되거나 박해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곧바로 여성순교자라고 부를 수는 없다.
페르페투아·펠리키타스·블란디나는 성경에 기록된 박해의 시기보다 뒤에 살았던 교회사 인물들이다.
블란디나는 누구인가?

블란디나는 177년 리옹 박해의 여성순교자다
블란디나는 서기 177년 무렵 로마 제국의 갈리아 지역에 있던 루그두눔, 오늘날 프랑스 리옹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는 여성 그리스도인이다.
블란디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는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가 《교회사》 제5권에 보존한 리옹과 비엔 지역 그리스도인들의 순교 기록이다. 이 자료에는 블란디나를 포함해 당시 박해를 받은 여러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자료 속 블란디나는 노예 신분의 여성으로 나타난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 노예는 자유인보다 사회적·법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이러한 신분은 그의 순교 기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된다.
하지만 블란디나에 대해 알려진 정보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출생연도와 가족관계, 개종 과정, 평소 성격을 확인할 만한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믿음을 가졌다거나 극적인 계기로 회심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사실처럼 덧붙여서는 안 된다.
블란디나의 순교 기록은 어떻게 전해졌을까?
블란디나의 이야기는 그가 직접 쓴 자서전이나 일기를 통해 전해진 것이 아니다. 유세비우스가 《교회사》에서 리옹과 비엔의 그리스도인들이 보낸 편지 형식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후대에 알려졌다.
따라서 블란디나의 내면이나 감정을 자세히 묘사할 때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비교적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그가 노예 신분의 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77년 리옹 지역의 박해 가운데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순교자로 기억된다는 점이다.
오늘의 신앙에서 이 기록을 읽으며 한 가지 질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회적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가치까지 낮게 보고 있지는 않은가? 블란디나의 이야기는 지위가 한 사람의 신앙적 가치나 존엄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한다.
페르페투아는 누구인가?

페르페투아는 203년 카르타고에서 순교한 젊은 여성이다
페르페투아는 서기 203년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처형된 대표적인 여성순교자다.
그에 관한 핵심 자료는 흔히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수난》으로 불리는 초기 기독교 순교 문헌이다. 이 문헌은 페르페투아가 젊은 여성이었으며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였다고 전한다.
페르페투아가 교회사에서 특별히 주목받는 까닭은 문헌의 일부가 그의 1인칭 기록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문헌 전체를 페르페투아 한 사람이 쓴 것은 아니다. 페르페투아에게 귀속되는 부분과 편집자 또는 다른 서술자가 기록한 부분이 함께 존재한다.
이 차이를 알고 읽으면 페르페투아의 이야기를 단순한 후대의 전설로 치부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세부를 현대적 의미의 완전한 전기 자료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피할 수 있다.
페르페투아의 가족 갈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수난》에는 페르페투아와 아버지 사이의 갈등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아버지는 딸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요청하며, 어린 자녀에 관한 내용도 기록에 포함되어 있다.
이 장면을 단순히 페르페투아가 가족보다 종교를 선택했다고 정리하면 문헌 속 복잡한 긴장을 놓치기 쉽다. 기록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극심한 박해 상황에서 가족관계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서로 충돌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그리스도인이 이 이야기를 가족과의 갈등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신앙과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맞설 때 자신이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무엇을 삼는지 돌아보는 자료로 읽는 편이 자연스럽다.
페르페투아의 환상 기록은 어떻게 봐야 할까?
페르페투아의 기록에는 여러 환상이 등장한다. 여기서는 고대 문헌이 그의 환상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환상의 모든 내용이 역사학적으로 객관적인 사건으로 확인되었다는 주장을 나누어 보아야 한다.
기독교인은 이 기록에서 신앙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종교 체험을 모든 그리스도인이 동일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성경적 교리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다른 교회사 인물을 살펴볼 때에도 도움이 된다. 환상이나 기적 이야기가 나오면 자료가 얼마나 이른 시기에 기록되었는지, 기록자는 누구인지, 사건에 대한 서술과 신학적 해석이 어떻게 섞여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펠리키타스는 누구인가?

펠리키타스는 노예 신분의 여성 그리스도인이었다
펠리키타스는 페르페투아와 함께 203년 카르타고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는 여성 그리스도인이며, 초기 문헌에서는 노예 신분의 여성으로 나타난다.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를 설명할 때 두 사람이 주인과 개인 하인의 관계였다고 단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를 넘어 두 사람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은 두 사람이 같은 순교 사건에 등장하고, 사회적 신분은 서로 달랐으며,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나의 순교 공동체로 기억되었다는 사실이다.
펠리키타스의 임신과 출산 이야기는 실제 기록에 있을까?
펠리키타스가 투옥될 당시 임신 중이었고 처형 전에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는 수백 년 뒤 만들어진 전승에만 있는 내용이 아니다.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수난》 자체가 그의 임신과 출산에 관한 내용을 전한다.
다만 표현은 신중해야 한다. 초기 문헌이 그렇게 기록한다는 말과 사건의 모든 세부가 여러 독립 자료를 통해 현대 역사학적으로 검증되었다는 말은 서로 다르다.
따라서 가장 조심스러운 설명은 초기 순교 문헌이 펠리키타스가 임신한 상태로 투옥되었고 처형을 앞두고 출산했다고 전한다는 것이다.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를 함께 기억하는 의미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는 사회적 위치가 달랐지만 같은 순교 기록 안에서 함께 그리스도인으로 기억된다. 이 모습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신앙적 정체성이 기존의 사회적 신분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고 초대교회가 모든 계급 차별을 완전히 없앴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의미 있는 사례이지만, 하나의 사건만으로 로마 시대 전체 기독교 공동체의 사회 현실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앙적으로는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가르침과 연결해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이는 역사자료 자체가 직접 주장하는 내용이라기보다 성경에 비추어 사건을 살펴보는 신학적 적용으로 구분해야 한다.
페르페투아·펠리키타스·블란디나는 무엇이 같고 다를까?

세 여성순교자의 공통점
세 사람은 모두 로마 제국 시대에 살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박해를 받았으며, 초기 기독교 자료에 이름과 순교 사건이 남아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들의 이야기는 남성 지도자만으로 초대교회 역사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준다. 여성 신자들도 박해받는 공동체의 구성원이었고, 초기 교회의 순교 문헌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등장했다.
다만 이런 공통점만으로 세 사람을 하나의 사건에 속한 인물처럼 묶어 설명해서는 안 된다.
시대와 지역, 신분과 자료가 서로 다르다
블란디나는 177년 무렵 리옹의 박해와 관련되어 있고,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는 203년 카르타고의 순교 사건과 연결된다.
블란디나와 펠리키타스는 자료에서 노예 신분의 여성으로 나타나지만, 페르페투아는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진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자료의 성격도 서로 다르다. 블란디나에 관한 핵심 이야기는 리옹·비엔 교회의 순교 기록을 유세비우스가 《교회사》에 보존하면서 전해졌다. 반면 페르페투아의 경우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수난》 안에 자신의 1인칭 기록으로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인물별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도 달라진다. 역사 인물을 정확하게 다루려면 자료가 많이 남은 사람과 자료가 적은 사람을 똑같은 정도로 자세히 묘사해서는 안 된다.
여성순교자 기록은 어떻게 사실 여부를 확인할까?

첫째, 성경 인물과 교회사 인물을 먼저 구분한다
기독교 인물을 확인할 때 가장 기본적인 순서는 그 이름이 성경에 실제로 등장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페르페투아·펠리키타스·블란디나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들의 이야기에 성경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반대로 사도행전이 남성과 여성 모두 초기 박해의 대상이었다고 기록한다는 사실은 성경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사건과 가까운 시대의 자료가 있는지 확인한다
성경 이후의 교회사 인물을 살필 때에는 이름과 사건을 얼마나 이른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블란디나에게는 유세비우스가 보존한 리옹 순교 기록이 중요한 근거가 된다.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에게는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수난》이라는 초기 문헌이 남아 있다.
후대의 성인전이나 설교에서만 확인되는 세부 이야기는 초기 문헌에서 직접 확인되는 내용과 같은 수준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셋째, 기록되어 있다는 말과 검증되었다는 말을 구분한다
교회사 글을 읽을 때 유용한 판단 기준은 기록과 검증을 같은 의미로 보지 않는 것이다.
어떤 내용이 초기 문헌에 실제로 적혀 있다면 초기 문헌은 이렇게 전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문헌에 기록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사건의 모든 세부사항이 독립적으로 확인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환상이나 기적적인 경험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종교적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는 신학적 해석의 영역을 포함한다.
성경 기록, 초기 문헌, 후대 전승, 신학적 해석, 오늘의 적용을 차례로 나누어 보면 여성순교자에 관한 과장된 정보와 실제 역사자료를 비교적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다.
여성순교자의 신앙은 오늘 무엇을 말해 줄까?

순교의 중심은 고통이 아니라 증언이다
여성순교자의 이야기가 오늘까지 전해지는 이유를 고통의 크기에서만 찾으면 핵심을 놓치기 쉽다. 순교의 중심은 얼마나 잔혹하게 죽었는가가 아니라, 믿음을 포기하라는 압력 앞에서 무엇을 선택했는가에 있다.
블란디나의 낮은 사회적 신분, 페르페투아가 겪은 가족과 신앙 사이의 긴장, 펠리키타스가 놓여 있던 취약한 상황은 각기 다른 현실적 압력을 보여 준다.
오늘의 그리스도인이 이들에게서 배울 내용은 고난을 찾아가는 태도가 아니다. 편리함과 양심이 충돌할 때 정직을 택할 수 있는지, 사회적 위치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존중하지 않는지, 믿는다고 말하는 가치가 실제 행동에도 드러나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현실적인 적용이다.
신앙의 용기와 위험한 행동은 구별해야 한다
초대교회 순교자를 존경한다는 이유로 일부러 위험을 찾거나 죽음을 신앙의 목표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순교자들은 이미 주어진 박해 상황에서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로 기억된다. 그러므로 일상에서 무모한 행동을 한 뒤 그것을 신앙의 용기로 포장하는 것은 순교 기록의 뜻과 다르다.
현대의 신앙적 용기는 오히려 평범한 선택에서 나타날 수 있다. 손해를 보더라도 거짓말하지 않고, 약한 사람을 이용하지 않으며, 잘못을 인정하고, 신앙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일도 믿음과 삶을 잇는 구체적인 실천이다.
교파에 따라 순교자를 기억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가톨릭·정교회·개신교는 초기 기독교 순교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순교자와 성인을 기념하고 이해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가톨릭과 정교회 전통에서는 성인과 순교자를 전례적으로 기념하며 그들의 신앙을 교회의 기억 안에서 중요하게 다룬다. 개신교는 성인 공경에 대한 신학적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초기 순교자들의 역사와 신앙의 증언 자체는 교회사적으로 연구하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특정 교단의 기념 방식을 기독교 전체가 공유하는 동일한 교리처럼 표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공통된 역사와 전통에 따른 신학적 차이를 함께 구분해야 정확한 설명이 된다.
여성순교자를 처음 공부한다면 어떤 순서가 좋을까?

성경의 초기 박해 기록부터 살펴본다
먼저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가 어떤 박해를 겪었는지 살펴보면 이후 교회사 자료를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사도행전 7장과 8장을 통해 스데반의 죽음과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를 확인하고, 여성 신자들도 박해의 대상이었다는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그다음에는 성경 시대와 성경 이후의 교회사 시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물별 초기 자료를 확인한다
블란디나를 공부할 때는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제5권에 보존된 리옹과 비엔 순교자 기록이 핵심 자료다.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를 살펴볼 때에는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수난》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다.
그 뒤 현대 연구서나 교회사 해설을 함께 읽으면 고대 문헌이 놓인 시대적·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반대로 출처가 표시되지 않은 인터넷 일화부터 접하면 후대 전승과 초기 자료를 가려내기 어려울 수 있다.
알려진 사실보다 더 많이 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사 인물은 짧은 기록만 남은 경우가 많다. 빈 부분을 상상으로 채우면 이야기는 풍성해질 수 있지만 역사적 정확성은 낮아진다.
여성순교자도 마찬가지다. 블란디나의 확인되지 않은 어린 시절, 페르페투아의 기록에 없는 개인적인 대화, 펠리키타스의 입증되지 않은 감정을 사실처럼 구성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사적 신뢰성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료가 말하는 범위 안에서만 설명하는 것이다.
페르페투아·펠리키타스·블란디나는 성경 밖의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여성순교자로 기억되는 인물들이다. 서로 다른 시대와 사회적 환경에 있었지만, 세 사람의 기록은 로마 제국 시대 여성 그리스도인들도 교회의 박해와 신앙의 증언에 깊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목적은 순교자를 흠 없는 영웅으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성경과 역사자료, 신앙적 해석을 차분히 구분하면서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믿음을 지켰는지 살펴보는 데 있다.
결국 여성순교자의 역사는 오늘의 독자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내가 믿는다고 말하는 가치는 실제로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도 지켜지고 있는가?
참고할 수 있는 주요 자료

성경과 초기 교회사 자료
여성 신자들이 초기 박해의 대상이었다는 성경적 배경은 사도행전 8장과 22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블란디나의 177년 리옹 순교 사건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제5권에 보존된 리옹·비엔 교회의 기록이 핵심 자료다.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에 대해서는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수난》이 중요한 초기 자료로 사용된다. 이 고대 문헌의 영어 번역은 Fordham University의 Internet History Sourcebooks와 같은 공개 학술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들을 읽을 때에는 문헌에 적힌 내용과 오늘날의 역사적·신학적 해석을 서로 구분하는 것이 좋다.
자주 묻는 질문

질문 1
Q. 여성순교자 페르페투아·펠리키타스·블란디나는 모두 성경에 나오는 인물인가요?
A. 아닙니다. 세 사람은 모두 신약성경 이후 초기 교회사에 등장하는 여성순교자입니다. 성경은 여성 그리스도인들도 초기 박해의 대상이었다고 기록하지만, 페르페투아·펠리키타스·블란디나의 이름과 생애는 성경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 문헌에서 확인됩니다.
질문 2
Q.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순교 이야기는 실제 기록으로 남아 있나요?
A. 네. 두 사람의 투옥과 순교를 다룬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수난》이 전해집니다. 특히 문헌의 일부는 페르페투아 자신의 1인칭 기록으로 여겨지지만, 전체 문헌을 모두 페르페투아가 직접 썼다고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질문 3
Q. 블란디나가 노예 신분이었다는 기록은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나요?
A. 블란디나에 관한 핵심 내용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제5권에 보존된 리옹과 비엔 순교자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자료에서 블란디나는 노예 신분의 여성 그리스도인으로 등장하며, 177년 리옹 박해의 대표적인 순교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