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퍼킨스(John M. Perkins)는 미국의 기독교 목회자이자 시민권 운동가이며, 지역사회 개발 사역에 힘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생애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은 인종 간 화해와 복음 전도, 가난한 지역을 섬기는 일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해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삶에서 확인되는 주요 사건과 그가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사역 원칙을 살펴보고,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일상에서 이를 무리 없이 적용할 방법을 정리한다.
미시시피에서 시작된 삶의 배경

퍼킨스는 1930년 미국 미시시피주 뉴헤브런에서 태어났다. 인종 분리 체제가 남아 있던 미국 남부에서 성장한 그는 젊은 시절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이후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1960년에는 가족과 함께 미시시피주 멘덴홀로 돌아가 지역 주민을 섬기는 사역을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관심이 추상적인 사회 논쟁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는 교육과 주거, 일자리와 보건처럼 이웃의 실제 삶을 구성하는 문제를 복음의 증언과 함께 바라보려 했다.
그렇다고 한 사람의 경험을 모든 지역과 교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교회가 퍼킨스의 이야기를 읽을 때에도 미국 남부의 역사적 조건과 한국 사회의 현실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시민권 운동 속에서 겪은 폭력

1970년 퍼킨스는 멘덴홀에서 벌어진 시위와 관련해 체포되었으며, 미시시피주 브랜든의 구금 시설에서 심각한 폭행을 당했다. 이 사건은 그의 회고와 전기 자료에서 확인되는 중요한 생애의 전환점으로 언급된다. 이후 그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와 정의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여기서 말하는 용서는 잘못을 없던 일로 돌리거나 피해 사실을 침묵시키는 태도와 다르다. 성경은 화해를 말하면서 죄의 고백과 회개, 이웃 사랑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고린도후서 5장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하게 하셨으며,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다고 증언한다. 따라서 이 본문은 고통을 서둘러 덮으라는 뜻이라기보다, 그리스도의 화해가 관계와 책임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넓은 문맥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퍼킨스가 강조한 ‘3R’의 뜻

퍼킨스의 사역은 흔히 ‘3R’, 즉 화해(reconciliation)·재배치(relocation)·재분배(redistribution)라는 세 단어로 정리된다. 이는 그가 지역사회 개발을 설명하면서 제시한 실천적 틀이다. 화해는 인종과 계층, 세대 사이의 적대를 복음 안에서 정직하게 다루려는 방향을 의미한다. 재배치는 필요한 현장 가까이에 머물며 관계를 맺는 책임을 가리킨다. 재분배는 단순히 돈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 기회와 기술, 관계망, 의사 결정의 권한을 지역 주민과 함께 나누는 문제까지 포함한다.
다만 이 3R은 성경에 직접 제시된 표현이거나 모든 교단이 공식적으로 채택한 교리는 아니다. 퍼킨스라는 사역자가 자신의 실천을 설명하기 위해 정리한 틀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표어를 그대로 가져오기보다,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주민의 목소리를 듣고 분별해야 한다.
복음 전도와 지역사회 섬김을 나누지 않은 이유

퍼킨스는 복음 전도와 지역사회 섬김을 서로 경쟁하는 과제로 보지 않았다. 복음은 개인의 회심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이웃을 사랑하라는 부르심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핵심 문제의식이었다. 예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보여 주신 내용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책임과 관련된다(누가복음 10:25-37). 그렇다고 이 비유를 특정 정치 프로그램 하나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어려움에 놓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 구체적인 필요를 돌보라는 요청은 분명히 읽을 수 있다.
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길 때에는 ‘우리가 도와준다’는 일방적인 구도를 조심해야 한다. 현장의 주민과 기존 기관, 실제 당사자의 판단을 충분히 듣지 않은 지원은 의도와 달리 의존이나 낙인을 남길 수 있다. 퍼킨스의 사역에서 얻는 유익은 거창한 구호에 앞서 관계를 꾸준히 이어 가고, 지역 주민이 과정에 참여하는지를 묻게 한다는 데 있다.
오늘의 교회가 점검할 실행 순서

처음부터 큰 규모의 사업을 시작할 필요는 없다. 한 교회나 소그룹이 지역을 향한 섬김을 검토한다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작은 실천부터 시작할 수 있다.
- 교회 주변의 학교와 복지기관, 주민 모임을 통해 반복해서 나타나는 필요를 먼저 듣는다.
- 교회가 이미 보유한 공간과 시간, 전문성 가운데 꾸준히 나눌 수 있는 자원을 구체적으로 적어 본다.
- 당사자와 함께 목표와 역할을 정하고, 도움을 받는 사람도 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한다.
- 정기적으로 결과를 돌아보되 숫자만 따지지 말고 관계의 안전성과 실제 유익도 함께 살핀다.
-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변명하기보다 경청하고 수정하는 절차를 선택한다.
특히 재정 지원이나 아동·취약계층 지원, 상담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법적 기준과 전문적 절차를 확인해야 한다. 신앙적 열정이 전문적인 도움이나 안전을 위한 절차를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화해를 말할 때 피해야 할 오해

화해는 갈등이 전혀 없다고 선언하는 일이 아니다. 차별이나 상처를 경험한 사람에게 “이제 잊으라”고 압박하면 오히려 화해의 길을 막게 된다. 반대로 상대를 영원히 낙인찍는 태도 역시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을 닫을 수 있다. 퍼킨스의 삶은 고통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복음으로 인해 적대의 언어만으로 결론 내리지 않으려 했던 한 사역자의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교회 안에서 갈등을 다룰 때에는 사실을 확인하고 당사자의 안전을 살피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여기에 책임 있는 사과와 변화, 필요할 경우 외부 전문기관의 도움을 구하는 과정도 함께 필요하다. 개인 사이의 다툼과 구조적인 문제를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하지 않는 분별 역시 중요하다.
한 인물의 삶을 묵상으로 연결하는 질문

존 퍼킨스의 생애가 그리스도인이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복음이 우리의 말과 관계, 그리고 지역의 삶 속에서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이번 주에는 내가 속한 교회나 동네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들의 필요를 직접 들을 기회가 있는지, 우리의 도움이 상대의 존엄과 참여를 높이는 방식인지 질문해 볼 수 있다.
이 질문에 당장 크고 분명한 답을 내리지 못해도 괜찮다. 성급하게 약속하기보다 정확하게 듣고,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을 오래 이어 가는 태도가 화해와 섬김을 배우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